* 본원에서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거머리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보기 드물지만 1970∼80년대만 해도 여름철 시골 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거머리였습니다.
지금은 다 이앙기로 하지만 예전에 일일이 손으로 모내기 할때는 거머리에게
피를 빨리지 않기 위해 도시에서는 농촌에 스타킹 보내기 운동을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스타킹 때문에 거머리 빨판이 붙지 못함)
며칠 전 뉴스에는 물이 아닌 곳에서도 사는, 아열대 지방에서 발견되는 산거머리가
지구 온난화로 우리나라(신안군 가거도)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실제 일본은 이 거머리 퇴치가 골치 거리라고 함)
북한에서 중국으로 수출해서 외화벌이를 위해 거머리를 잡는다는 뉴스도 오래전에 있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거머리로 여러 가지 질환을 고칠 수 있다고도 주장하지만
어쨌든 양의학에서 효과가 입증되고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손가락 접합수술이나 피판 수술(두꺼운 살을 혈액순환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옮기는 수술)에서의
사용입니다.
그렇다고 손가락 접합 수술이나 피판 수술에 거머리가 무조건 다 필요하거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통 손가락의 끝부분, 손톱 부위에서 절단되면 동맥은 이을 수 있지만 정맥을
잇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정맥이 훨씬 가늘고 힘이 없어서 동맥보다 정맥을
잇는 것이 더 힘듭니다.
정맥은 주로 손가락 등쪽이 굵어서 손가락 등쪽에서 잇고 동맥은 손 손가락 앞쪽이
굵으므로 앞쪽에서 연결합니다.
손톱 부위 절단에서는 손가락 등쪽에 손톱이 있으므로 정맥을 이어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앞쪽에서 정맥을 이어주는 것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어려운 경우가
더 많습니다.
동맥만 이어주는 경우는 처음에는 피가 통하다가 결국에는 막혀버립니다.
집에서 하수도가 막히면 상수도도 못쓰는 것처럼...
동맥으로 들어온 피가 나가지 못하면 충혈(울혈)현상이 생기면서 손가락 접합부위나
피판이 점점 시퍼런 색으로 바뀌면서 결국에는 동맥도 막혀서
괴사(조직이 죽는 것) 현상이 나타나서 접합수술이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몸은 어떻게 하던 잘린 부위를 살리려는 노력으로 잘린 부위로
혈관(동맥, 정맥 모두)이 자라 들어가게 합니다.
즉, 새로운 혈관이 손가락 잘린 부위 끝부분까지 자라 들어갈 때까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정맥 역할(들어온 피를 나가게)하면 동맥 순환을 유지할 수 있고 손가락을 살릴 수 있습니다.
수술 후 이렇게 정맥 역할을 하는 조작을 구제요법(salvage)이라고 합니다.
접합수술로 붙여놓은 부위를 칼로 상처를 내고 피가 나오도록 합니다.
(절단부위는 신경이 잘렸기 때문에 통증도 없습니다. 신경은 이어준다고 해서 바로 감각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연결부위에서 다시 자라들어가야 되므로 손가락 끝이라고 해도
통증을 느끼는 감각은 몇 주가 걸립니다.)
그냥 놔두면 지혈작용으로 금방 피가 멈추므로 헤파린(피가 굳지 않게 하는 약물)을
묻힌 면봉으로 계속 닦아줘서 피가 굳지 않고 계속 흐르도록 합니다.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30분-1시간마다 해야 되고 밤에도 쉬지 않고 해야되므
매우 정성이 필요합니다.
여담입니다만 보호자가 어머니인 경우가 가장 정성들여서 하므로 생존율도 높습니다.
보호자가 자녀인 경우는?
새로운 정맥이 자라 들어갈 때까지 7-10일정도 계속, 밤에 잠도 자지 않고 해야되는데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손가락에서 나는 피가 얼마나 나겠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작은 상처에서 계속 며칠 동안
피가 나오면 수혈이 필요할 경우도 있습니다.
접합 수술후에는 피가 굳지 않고 혈관이 확장되는 약물을 계속 투약하기 때문에 피는 계속 납니다.
거머리는 그럼 언제 쓰느냐?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밖에서 닦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아무래도 밤에는 피를 빼는 시간을
지키지 못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보통은 수술 직후에는 거머리가 피를 빨게 하고 다음부터는 밤에 한 마리 정도 붙힙니다.
물론 낮에도 계속 거머리를 쓰면 좋겠지만 거머리가 비싸고 (한마리에 몇 만원)
피가 또 너무 많이 나는 문제 등으로 아껴서 씁니다.
보통은 1-2cm의 작은 거머리가 피를 빨면 15분에서 30분 정도에 자기 몸의
5-10배까지(새끼 손가락 굵기까지) 피를 빨게 됩니다.
거머리의 효과는 단순히 거머리가 피를 빠는 동안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머리가 피를 빨면서 “히루딘”이라는 물질을 빠는 상처 안으로 집어넣습니다.
모기에 물리면 가려운 이유도 모기가 피를 빨 때 피가 굳어서 피는 빠는 자기 몸의
대롱이 빠지지 않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떤 물질을 집어넣는데 이것이 가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거머리도 같은 이유로 피가 굳지 않게 하는 성분인 “히루딘”을 집어넣는 것일 것입니다.
이 히루딘이 우리 몸 안에 들어오면 피가 굳지 않게 하는 작용을 하게 되고
거머리가 떨어져 나온 뒤로도 피가 계속 흐르게 됩니다.
이 효과는 8-12시간동안 지속됩니다.
아직 이 ‘히루딘’(아니면 또 다른 성분)의 작용 원리, 효과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단순히 피가 굳지 않게 하는 것 이외에도 항염증, 진통, 조직 재생을 촉진하는 작용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거머리가 피를 빠는 동안은 잘 지켜봐야 됩니다.
피가 잘 나오지 않는 절단부위보다 피가 더 잘 나오는 정상부위를 빨려고 이동할수도 있으니까요.
피판술에서는 보통 동맥과 정맥을 같이 이어주므로 보통은 별 문제가 없지만
앞서 적은대로 정맥의 벽이 약해서 쉽게 눌리고 잘 막힙니다.
정맥이 눌려서 피판의 색깔이 조금 파래지는 것 같으면 구제요법을 합니다.
이런 구제요법은 동맥이 원활하게 혈액공급을 한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이지
동맥이 막혀서 죽어가는 경우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즉, 거머리를 붙힌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 1) 우리가 논에서 본 거머리와 의료용 거머리는 다른가요?
2004년에 미국의 FDA는 거머리를 ‘의료기구(medical device)’로, 유럽연합 관리국은
‘약품/의료상품(drug/medical product)’으로 승인하였는데 여러 거머리중에서도
히루도 메디키날리스(Hirudo Medicinalis)종만을 승인했습니다.
의료용 거머리는 환자 몸에서 피를 빨기 때문에 자체가 세균을 가지고 있으면
환자에게 감염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거머리 사용 초기에는 거머리 사용에 따른
특수한 세균이 문제가 되기도 함) 엄격한 관리 하에 무균상태에서 키워져야 합니다.
당연히 논에 있는 거머리는 세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쓰면 안되는 것입니다.
서두에 적은 북한에서 논에서 잡은 거머리를 중국에 수출한다고 하니까 혹시라도
중국에서 거머리 치료를 받을 분은 조심하셔야 됩니다.
국내에서 쓰이는 거머리는 거의 영국에서 수입합니다.
국내에 있는 거머리종은 크기가 작고 빠는 힘도 약해 덩치가 2배 이상 큰
FDA 승인이 난 종류를 쓰는 것입니다.
거머리 수입 업체는 석 달정도 굶긴 거머리를 특수 보존액이 든 수족관에 보관하고 있다가
병원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퀵 서비스’로 배달을 해줍니다.
손가락 접합 수술은 응급수술이므로 야간을 포함 , 24시간 대기 상태에서 배달해줍니다.
국내에서는 거머리를 못 키우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시는데 정확히는 모르지만
거머리를 키우는 시설 투자 비용에 비해서 수요가 많지 않아서 수입하는 것이
더 단가가 싸서 굳이 키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 수입업체 이야기입니다.
질문 2) 한번 쓴 거머리는 재활용이 안되나요?
거머리는 피를 한 번 배불리 먹으면 몇 개월동안 피를 빨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쓰고 폐기합니다.
보통은 냉동고에 넣어서 얼려서 죽인 후 의료용 적출물로 폐기합니다.
(의료용 적출물과 폐기물은 감염 전파위험성 때문에 법으로 엄격한 절차에 의해 관리, 폐기됩니다.)
또한 한번 환자의 피를 빤 거머리를 다른 환자에게 사용하면 수혈로 감염될 수 있는
질환(AIDS, 매독, B나 C형 간염 등)도 옮길 수 있으므로 당연히 사용하면 안됩니다.
서두에 적은 산거머리가 발견된 뉴스가 문제가 되는 것도 이 질병 전파때문입니다.
거머리가 물이 아닌 산에서도 살게 되어 야생동물과 사람의 피를 옮겨 가며 빨 수 있고
등산객이 이 거머리에 물리면 야생동물의 질환이나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질환을
옮겨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라리아 모기가 말라리아(학질)을 옮기는 것처럼....